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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여행] 70대 어머니와 떠나는 역사 산책: 눈의 왕국, 그 땅의 주인 '아이누족' 이야기

by Daniella1022 2026. 3. 14.

아이누족 3대 갸족
아이누족 3대 가족

 

 

안녕하세요. 70대 어머니와 함께 홋카이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50대 딸입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공을 들인 부분 중 하나가 바로 '홋카이도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예쁜 풍경만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밟는 이 땅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고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알고 간다면 어머니께도, 저에게도 훨씬 깊은 울림이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공항 이동이나 환전 같은 실용적인 정보도 중요하지만, 오늘은 제가 어머니께 설명해 드렸던 홋카이도의 옛 주인, '아이누족'의 역사에 대해 심도 있게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여행 전 이 글을 읽어보신다면 홋카이도가 단순한 관광지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실 것입니다.


1. 홋카이도의 진짜 주인, '아이누(Ainu)'는 누구인가?


홋카이도 여행을 하다 보면 '아이누'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아이누'는 그들의 언어로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의 국가 기틀이 잡히기도 훨씬 전부터 홋카이도, 사할린, 쿠릴 열도 등 북방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았던 원주민들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외모가 우리가 흔히 아는 일본인(야마토 민족)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입체적인 이목구비에 오뚝한 코, 풍성한 털을 가진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남자들은 수염을 길게 길렀고, 여자들은 입가에 문신을 새겨 미적 기준이나 성인식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어머니께 이 사진들을 보여드렸더니 "어머, 정말 일본인 같지 않고 이국적이네!"라며 신기해하셨어요. 이들은 자연과 동물이 인간과 대등하다는 세계관을 가졌고, 특히 곰을 숭배하며 연어를 주식으로 삼아 평화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2. '에조치'에서 '홋카이도'가 되기까지의 투쟁


과거 일본은 홋카이도를 '오랑캐의 땅'이라는 뜻의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렀습니다. 일본 역사에서 가장 높은 무관직인 '쇼군(정의대장군)'이라는 명칭 자체가 사실은 이 아이누족(오랑캐)을 정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직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아이누족과 일본인의 갈등이 폭발한 결정적인 사건은 1457년 '코샤마인 전쟁'이었습니다. 사소한 물건값 시비 끝에 일본인 대장장이가 아이누 소년을 살해한 사건이 발단이었습니다. 이후 1669년 '샤쿠샤인 전쟁' 등 아이누족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앞에 화살을 든 아이누족은 역부족이었고, 결국 1670년 휴전을 약속하는 파티장에서 리더인 샤쿠샤인이 비겁하게 살해당하면서 아이누족의 주권은 사실상 무너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아이누족은 일본인들의 가혹한 노동 착취와 차별 아래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3. 메이지 유신과 사라진 정체성: '동화 정책'의 비극


1869년, 메이지 정부는 '에조치'를 '홋카이도'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강제로 일본 영토에 편입시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개척'이라는 이름의 침탈이 시작됩니다. 일본 정부는 아이누족을 '구토인(옛 땅의 사람)'이라 부르며 차별했고, 1899년 '홋카이도 구토인 보호법'을 제정합니다. '보호'라는 이름 뒤에는 아이누어를 금지하고, 전통 의식과 풍습을 야만적이라며 없애버리는 잔인한 동화 정책이 숨어 있었습니다. 아이누족은 일본식 이름을 강요받았고, 인종 연구라는 명목으로 강제 인체 실험이나 징병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1903년 오사카 박람회에서는 살아있는 아이누족을 동물원 짐승처럼 우리에 가둬 전시하는 반인륜적인 행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대목을 설명해 드릴 때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전시할 수 있느냐"며 무척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4. 600년 만의 인정, 그 뒤에 숨겨진 정치적 셈법


오랜 세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던 아이누족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후손들의 노력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 최초의 아이누족 국회의원이 탄생했고, 아이누어 사전이 만들어지며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죠. 하지만 일본 정부가 아이누족을 공식적인 '원주민'으로 인정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인 2019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차가운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분쟁에서 "이 땅에 우리 원주민인 아이누족이 사니 홋카이도와 주변 섬들은 우리 땅이다"라는 주장을 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죠. 진심 어린 사과나 반성 없이 필요에 의해 인정받은 현실에, 현재 약 1만 3천 명밖에 남지 않은 아이누족 후손들은 여전히 씁쓸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5. 50대 딸이 전하는 여행 팁: 역사를 알면 풍경이 보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홋카이도를 여행하며 방문하게 될 '우포포이(민족공생상징공간)'나 오타루의 박물관 등에서 우리는 이 아이누족의 흔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지명의 유래: 삿포로(삿 포로 페 = 건조하고 넓은 강), 노보리베츠(누 푸루 펫 = 색이 짙은 강) 등 우리가 가는 대부분의 여행지 이름이 아이누어에서 왔다는 것을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 미식의 뿌리: 홋카이도의 대표 음식인 연어 요리나 '치타탑' 같은 미식 문화도 아이누족의 식문화에서 기원한 것이 많습니다.


6. 마무리에 부쳐: 어머니와 함께 걷는 길


70대 어머니께 이 모든 비극적인 역사를 다 말씀드리는 것이 처음에는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오히려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이 땅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행은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시간을 존중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번 준비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홋카이도의 하얀 눈은 그 모든 아픈 역사를 덮어주고 있지만, 그 아래 숨 쉬는 아이누족의 숨결을 기억하며 여행한다면 훨씬 더 풍성한 효도 여행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