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에 위치한 뮤지엄 산(Museum SAN)은 ‘산’이라는 자연적 의미를 넘어서 Space(공간) + Art(예술) + Nature(자연)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으로, 건축, 자연,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입니다. 이곳의 공간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룹니다.
해발 275미터의 산등성이 위에 총 700m에 이르는 동선을 따라 웰컴센터, 플라워가든, 조각정원, GROUND, 빛의 공간, 워터가든, 본관, 스톤가든, 명상관, 제임스 터렐관까지 각기 다른 감성을 지닌 공간들이 순차적으로 펼쳐집니다. 공간과 공간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면서 관람객의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소통을 위한 단절(Disconnect to connect)’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입니다. 뮤지엄 산은 관람객이 번잡한 도시생활 속에서 느끼던 일상의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감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감각적 자극에 대해 반응하면서 머릿속의 복잡함을 내려놓고 오롯이 자연의 평화로움 안에서 마음을 쉬게 하는 장소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뮤지엄 산의 건축적 매력, 주요 전시공간을 상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뮤지엄 산의 시작, 공간의 리듬을 만드는 웰컴센터
뮤지엄 산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펼쳐진 석벽의 존재감입니다. 이 벽은 파주석으로 쌓아 올렸는데, 파주석은 기본적으로 은은한 회색을 띠지만 노란 기운을 띤 베이지색, 활갈색, 붉은 기운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 빛의 각도나 날씨, 보는 위치에 따라 색감과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돌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질감과 패턴을 지니고 있어, 벽 자체가 일종의 자연 회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뮤지엄 산의 석벽은 은은한 베이지와 약간의 붉은 기를 띠는데 따스하고 온화한 느낌을 줍니다.
이 석벽은 뒤로는 주차장을 감싸듯 둘러싸고 있으며, 앞쪽도 곡선으로 감싸는데 곡선을 따라 걷다 보면 재질 대비가 돋보이는 노출 콘크리트 구조물이 숨은 듯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웰컴센터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따스한 색감의 동그라미 모양의 석벽과 차가운 느낌의 콘크리트로 된 공간이 하나의 조형처럼 어우러지며, 공간 구성의 긴장과 조화를 동시에 느끼게 해줍니다.
공간이 열렸다가 닫히고, 다시 확장되며 연결되는 동선 구조는 안도 타다오 건축 특유의 리듬감을 잘 보여줍니다. 웰컴센터에는 매표소, 카페, 뮤지엄 숍 등이 있으며 뮤지엄 산 전체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첫인상이자 공간적 도입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조각과 자연이 교감하는 산책의 시작 – 플라워가든, GROUND, 빛의 공간
웰컴센터를 나서면 외부조형물과 정원 쪽으로 시야가 열렸다가 다시 벽이나 가벽으로 막히는 구조로 배치되어 ‘연결을 위한 단절’이라는 철학이 구현됩니다. 곡선의 석벽을 지나며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뮤지엄 산의 첫 야외 전시장인 플라워가든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플라워가든(Flower Garden)은 사계절 내내 여러 가지 꽃으로 색감이 변화하는 산책형 정원입니다. 정원의 오른쪽에는 마크 디 수베르 (Mark di Suvero)의 붉은 철제 조각 ‘제라드 먼리 홉키스를 위하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폐 H-빔을 활용해 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을 구현했으며, 바람이 불면 작품의 상단이 움직이는 역동적인 설치미술입니다.
이 작품 뒤편에는 GROUND라는 지하전시관이 있습니다. 안도 타다오와 안토니 곰리의 협업으로 조성된 이 공간은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천장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돔 형태의 공간이 펼쳐집니다. 내부에는 안토니 곰리의 작품 ‘Blockwork’가 설치되어 있으며,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미술로 작용합니다. 빛과 소리의 변화에 따라 감각이 확장되는 구조입니다.
정원의 왼편에는 빛의 공간(Light Space)이 있습니다. 콘크리트 벽이 둘러싼 사각형 공간의 천장에서 십자형 빛만이 떨어지도록 설계된 이 장소는 건축을 최소화하고, 빛과 그림자만으로 관람객의 감각을 자극합니다. 안도 타다오 건축철학의 정수로 평가되며, 조용히 내면과 마주하는 공간으로 많은 방문객이 강한 인상을 받는 장소입니다.
플라워가든 끝 지점에서는 자작나무 길이 펼쳐지며, 은빛으로 빛나는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관람객의 다음 여정으로 자연스럽게 이끕니다.
건축과 예술이 만나는 중심 – 워터가든과 본관
플라워가든과 야외 공간을 지나 마주하는 워터가든(Water Garden)은 얕은 수면 위에 하늘과 산이 반영되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대표 포토존입니다. 본관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를 통해 공간과 자연, 예술이 하나가 되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연못의 중앙에는 알렉산더 리버만의 주황색 아치 조형물 ‘Archway’가 설치되어 관람객을 본관으로 이끕니다.
본관은 뮤지엄 산의 핵심 건축물이자 전시 중심 공간입니다. 사각, 삼각, 원형의 ‘무의 공간’(의도적으로 아무것도 두지 않고 비운 공간) 들이 4개의 윙(wing)을 연결하며, 이 공간들은 ‘하늘, 땅, 사람’이라는 천지인(天地人) 철학을 상징합니다. 본관은 외부의 파주석 박스 안에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구조체가 삽입된 Box in Box 구조로 설계되어, 인공과 자연의 중간지대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본관 내부에는 페이퍼 갤러리와 청조 갤러리 등의 시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이퍼 갤러리는 종이, 한지, 제지와 관련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하며, 문화의 전달자이자 창조 매체로서의 종이를 재조명합니다. 청조 갤러리는 매년 2회의 기획전과 상설전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미디어아트, 영상, 빛 예술 등을 소개합니다.
본관의 복도들은 직선이 아닌 경사와 굴곡, 좁은 통로로 이어지며 자연광이 파주석 담과 처마 사이의 작은 광창을 통해 흘러들어옵니다. 이 빛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며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또 유리벽은 매 순간 바뀌는 자연을 큐레이팅합니다.
본관을 나서자마자 에릭 오어(Eric Orr)의 설치작품 ‘폭포’가 설치되어 있으며, 물이 빗살무늬 구조물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내는 시각적 리듬이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은 본관과 스톤가든을 연결하는 감각적 전환점 역할을 합니다.
감각의 몰입, 완전한 고요 – 스톤가든, 명상관, 제임스 터렐관
스톤가든은 신라 고분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된 부드러운 곡선의 9개 스톤 마운드로 구성된 명상형 야외 정원입니다. 돌 언덕과 언덕 사이의 길을 따라 이동하며, 헨리 무어의 청동조각 ‘누워 있는 인체’와 베르나르 브네의 ‘부정형의 선’ 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국 팝아티스트 조지 시걸의 ‘두 벤치 위의 연인’도 본관에서 스톤가든으로 나가자마자 바로 만나게 됩니다.
스톤가든 끝자락에는 명상관이 있습니다. 돔형 노출 콘크리트 구조로,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오로지 천장의 아치형 채광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만으로 공간이 조성됩니다. 이곳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음악 명상과 고요한 명상 프로그램이 40분간 진행됩니다. 관람객은 침묵 속에서 오롯이 자연과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제임스 터렐관은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전용 상설관으로, 전 세계에 단 6곳밖에 없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그는 빛과 공간만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작가로, 뮤지엄 산에서는 Skyspace, Wedgework, Ganzfeld, Horizon Room 등 몰입형 공간 예술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Skyspace는 돔 형태의 천창을 통해 하늘을 감상하는 공간이며,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하늘빛을 직접 체험합니다. Ganzfeld는 무한히 확장되는 것처럼 보이는 빛의 공간으로, 감각과 지각의 경계를 흐리는 체험을 제공합니다. Horizon Room은 공간을 계단으로 따라 올라가며 하늘과 빛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Wedgework는 빛 한 줄기 없는 어둠 속을 손으로 더듬으며 이동하는 감각의 극한을 체험하게 합니다. 이 모든 공간은 사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자연 속 건축미술관, 왜 뮤지엄 산이어야 하는가
뮤지엄 산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닙니다. 자연·건축·예술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감각의 쉼표 같은 장소입니다. 그저 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느끼고 걸으며, 결국에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미학과 제임스 터렐의 빛의 예술, 그리고 강원도의 자연이 결합된 이곳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깊은 몰입과 울림을 제공합니다. 머무는 시간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빛과 그림자, 공간의 리듬은 관람자 각자에게 고유한 감정의 파장을 선물합니다. 계절마다, 시간대마다, 그리고 그날의 감정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곳. 이 모든 것이 뮤지엄 산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단 한 번의 방문으로는 다 담을 수가 없어서, 다시 찾고 싶어지는 힘이 있는 곳입니다. 예술을 넘은 예술, 공간을 넘은 감각의 미술관. 지금, 당신만의 빛을 찾으러 뮤지엄 산을 걸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