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장한 설악산의 품에 안긴 속초는, 동쪽으로는 드넓은 동해와 맞닿아 있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여행지입니다. 특히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산자락과 고요해진 해변이 어우러져, 속초는 다시 한번 깊이 있는 자연 도시로 변모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단풍의 절정을 만날 수 있는 설악산 비선대, 역사적 의미와 해안 절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외옹치 바다향기로, 그리고 생태와 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영랑호 호수윗길까지 가족과 함께 걷기 좋은 가을 코스를 소개합니다.
짧지만 깊은 여정 속에서 산과 바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진짜 속초의 가을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설악산 비선대 – 가을 단풍과 함께 걷는 신선의 길
설악산 비선대 코스는 속초를 대표하는 가을 단풍 명소 중 하나로, 웅장한 자연과 전설이 어우러진 길을 따라 걷는 경험이 특별합니다. 탐방은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에서 출발하며, 신흥사와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좌불상을 지나게 됩니다. 이후 나오는 갈림길에서 비선대 방향을 선택하면 신선이 머물렀다는 전설이 서린 고요하고 아름다운 길이 펼쳐집니다.
비선대까지는 편도 약 2.3km 거리이며, 초반 약 1.4km 구간은 휠체어나 유모차도 통행 가능한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무장애 구간은 평탄한 흙길이 이어지고, 양옆으로는 울창한 숲이 펼쳐지며, 계곡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물소리보다는 숲 사이를 오가는 새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는 고요한 구간입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무, 야생화, 동물에 대한 해설판도 곳곳에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여행자들에게도 유익한 탐방로입니다.
설원교를 지나면서부터는 무장애 구간이 끝나고, 기암절벽과 옥빛 계곡물로 둘러싸인 전설의 명소 와선대로 향하게 됩니다. 와선대는 바둑 두기와 거문고 타기를 즐기던 신선이 너른 바위에 누워 경치를 감상할 만큼 아름다웠던 장소로 전해집니다. 한때는 정말 신선이 누웠다고 할 만큼 평평하고 너른 바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풍화로 인해 대부분 사라지고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주변의 울창한 숲, 암벽, 투명한 계곡물이 어우러진 풍경은 여전히 신선의 발자취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와선대를 지나면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됩니다. 길은 점차 돌길로 바뀌고 경사가 조금씩 높아지지만,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소리와 주변 바위 지형, 단풍 숲이 어우러진 풍경은 오히려 걸음을 즐겁게 만듭니다. 돌길을 어느 정도 오르다 보면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이 계단을 따라 오르면 마침내 비선대에 도착하게 됩니다.
비선대 ‘신선이 하늘로 올라간 자리’라는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앞서 와선대에서 경치를 감상하던 신선이 이곳에서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그 전설을 듣고 나서 실제 풍경을 마주하면 왜 그런 이야기가 생겼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신비롭고 웅장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바위 절벽들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단단하고 입체감 있게 서 있고, 그 아래에는 넓은 바위가 펼쳐지며 그 주변으로는 물빛이 유난히 푸른 연못이 고요히 자리합니다. 이어지는 단차로 인해 계곡물이 돌에 부딪히며 하얗게 부서지듯 흘러내리고, 거친 바위 틈새마다 나무들이 억세게 뿌리를 내리고 무성하게 자라며, 그 잎들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깊어가는 가을빛을 완성합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면 절벽 너머로는 미륵봉, 선녀봉, 형제봉이 병풍처럼 서 있어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가을 속초 여행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비선대는 단풍 명소를 넘어, 자연의 신비와 깊이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외옹치 바다향기로: 파도 따라 걷는 시간
설악산 자락을 따라 해안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도심의 소란을 뒤로한 채 고요한 바닷가가 차창 밖으로 펼쳐집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속초해변과 달리, 이곳은 조용하고 아담한 분위기를 간직한 외옹치 해변입니다. 작은 모래사장 너머로 시원한 파도가 밀려오고, 바람은 소리 없이 해변을 쓸고 지나갑니다.
외옹치 해변에서 연결되는 외옹치 바다향기로는 속초의 숨은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 산책로입니다. 한때는 군사보호구역으로 수십 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곳이지만, 최근에 들어 데크 산책로로 정비되어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왕복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이 길은, 단순한 해안 산책로 그 이상입니다. 여러 개의 테마 구간이 이어져 걷는 내내 변화무쌍한 풍경과 스토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만나는 구간은 ‘대나무 명상길’입니다. 울창한 대나무숲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잎의 사각거림은 도심에서 잊고 살았던 고요함을 되찾게 해 줍니다.
이후 만나는 ‘하늘 데크길’은 외옹치 바다향기로의 백미입니다. 해안 절벽을 따라 조성된 이 길은 곳곳에 투명 유리바닥이 설치되어 있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아찔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또한 바다 쪽으로 돌출된 전망대가 중간중간 이어져, 속초 해안선과 드넓은 동해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한 전망대는 송혜교와 박보검 주연 드라마 ‘남자친구’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사진 명소로 더욱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간은 ‘안보체험길’입니다. 이곳은 속초의 현대사를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입니다. 1970년대 무장공비의 해안 침투 사건 이후 이 해안선을 따라 총 970m에 달하는 높이 2m의 철제 경계 철책이 세워졌습니다. 이후 대부분의 철책은 철거되었지만, 약 195m 구간을 남겨 역사교육 및 안보 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남겨진 철책과 데크가 맞닿게 길을 조성하고, 철조망에 안내판을 붙여 한반도의 분단 현실과 과거 속초의 안보 상황을 되새길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이 산책로에는 ‘암석관찰길’도 포함되어 있어 파도에 깎여 형성된 독특한 해안 암석 지형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지질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물론,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도 흥미로운 공간이 됩니다. 운이 좋으면 바위 위에 앉아 쉬고 있는 야생 물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니, 자연 속 작은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산책의 종착점인 외옹치항은 속초항과 대포항 사이에 자리한 작은 마을로, 포구로 들어오는 고기잡이 배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구할 수 있는 전형적인 어촌의 모습을 보입니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평화로운 항구의 풍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처럼 외옹치 바다향기로는 자연의 아름다움, 역사적 의미, 지역의 일상까지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속초만의 입체적인 가을 산책길입니다.
영랑호 호수윗길: 자전거와 함께 즐기는 물안개 산책
속초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영랑호는, 도심과 자연이 맞닿은 특별한 풍경을 자랑하는 가을 산책 명소입니다.
영랑호는 바다 퇴적물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석호(潟湖)로, 지형적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자연 생태환경이 잘 유지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구가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 숭어, 황어 등의 어류가 풍부해서 이를 먹이로 삼는 왜가리, 백로, 흰뺨검둥오리, 가마우지 등 다양한 철새들과 텃새들의 활동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영랑호는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 서쪽으로는 설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산과 바다가 한눈에 어우러지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날이 맑을 때는 우뚝 솟은 울산바위의 웅장한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고, 흐린 날에는 구름에 가려진 봉우리가 오히려 전설 속 풍경처럼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영랑호를 가장 편하게 둘러보는 방법 중 하나는 ‘호수윗길’ 산책로를 걷는 것입니다. 호수윗길은 영랑호를 가로지르는 부교 형태의 데크 산책로입니다. 산책로 중간 지점에 원형 광장이 있는데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멀리 달마봉, 신선봉, 화채봉을 포함한 설악산의 여러 봉우리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일출과 일몰 시간대에 방문하면 호수와 산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영랑호를 보다 깊이 있게 둘러보고 싶다면, 스토리 자전거 체험을 추천합니다. 문화해설사가 동행하는 이 투어는 자연, 역사, 생태, 문학을 아우르는 테마형 체험으로, 자전거를 타고 영랑호 일대를 천천히 돌아보며 다양한 이야기와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입니다.
코스는 두 가지로 나뉘며, A코스는 보광사에서 충혼탑까지 이어지는 약 3km 구간으로 소요 시간은 약 30분 정도입니다. B코스는 범바위를 출발해 호수윗길과 공룡바위를 지나며 약 8km를 달리는 코스로, 약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코스별로 풍경과 설명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 선택의 재미도 있습니다. 자전거는 4인승과 6인승이 준비되어 있으며, 각각 50,000원과 70,000원의 요금에는 해설사 비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발은 영랑호 범바위 인근의 자전거 대여소에서 시작되며, 근처에 위치한 문화해설사의 집에서 안내를 받고 출발하게 됩니다. 예약은 전화(033-637-7009)를 통해 가능하고, 내비게이션에는 ‘영랑체험사업단’을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 단위 여행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으며, 가을 단풍철에는 더욱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는 코스입니다.
이처럼 영랑호는 단풍뿐만 아니라 생태, 경관, 체험이 모두 어우러진 속초 가을 가족 여행지로 손색이 없습니다. 자연과 나란히 걷고 싶다면, 이곳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가을 속초, 기억에 남을 단풍 여행
속초는 단풍의 계절에 더없이 아름다운 색을 입습니다. 울긋불긋 물든 계곡과 산, 바다를 따라 걷는 길, 호수 위를 걷는 듯한 산책로까지. 짧은 여행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의 깊이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번 가을, 가족과 함께 속초로 떠나 보세요. 단풍보다 더 선명한 추억이 발걸음을 따라 만들어질 것입니다.
설악산 비선대의 장엄한 절경과 외옹치 바다향기로의 고요한 해안길, 영랑호수윗길의 감성적인 풍경은 각기 다른 매력을 선사합니다. 단풍과 함께 속초의 자연, 역사,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코스들이 조화를 이루며,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해 줍니다.
계절이 지나도 오래 기억될 장면들이 이 길들 위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말,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속초의 가을은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깊이 있는 여행이 되어줄 것입니다.